퇴근길에 대형 서점에 들러 요즘 많은 독자들이 찾는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훑어봤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구원으로 여기며 순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단 서점뿐일까요? 유튜브, 팟캐스트에 소셜 미디어까지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넘쳐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자만의 착각일까요?
요즘 2030 사이에서 운을 바꾸고 성공하자는 일종의 ‘개운’하기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형태만 다를 뿐 성공을 구원으로 여기며 찾아나서는 순례자들은 세대와 상관없이 늘 우리 곁에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나에게 맞는 ‘성공 방정식’에 관한 정답이 어딘가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 정답을 찾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성공 신화를 따라 하면 생기는 일
GE의 잭 웰치는 한때 ‘세기의 경영자’로 불렸습니다. 수많은 기업가들이 그의 경영 철학을 성경처럼 받들며 따라 했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단기 성과주의와 과도한 구조조정이 남긴 후유증이 드러나자, 그의 성공 신화를 좇던 추종자들이 가장 먼저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잘못된 성공 신화를 찾아 나섰던 것인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좇던 사례들은 더 씁쓸합니다. 많은 연구 끝에 경영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잡스를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는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의 완벽주의와 직관적 리더십은 ‘스티브 잡스’라는 특수하고 한정적인 맥락 안에서만 작동할 수 있었던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의 후계자인 팀 쿡조차 잡스의 방식과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며 경영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해왔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의 성공 방정식을 좇아 순례의 길을 떠나려 하는 걸까요?
실패에서 배우는 법 – 세계는 이미 실패를 모으고 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통찰을 비즈니스에 적용해 보면 흥미로운 논리로 귀결됩니다.
“성공한 사람의 성공 비결은 제각기 다르지만, 실패 사례에서는 놀랍도록 엇비슷한 공통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성공은 개인의 자질, 사회적 환경, 시대적 배경,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행운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공의 비결을 알아낸다 해도, 그것을 내 상황에 그대로 복붙(복사, 붙여넣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반면 실패는 다릅니다. 시장의 외면, 자금 악화, 팀 내 불화, 관리 소홀, 역량 부족 같은 주요 실패 원인들은 산업과 시대를 넘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이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분야들이 있습니다.
항공 산업이 대표적입니다. 전 세계 항공사는 사고가 발생하면 블랙박스 데이터를 국제기구에 의무적으로 제출하고, 원인 분석 결과를 업계 전체와 공유합니다. 한 항공사의 추락이 모든 항공사의 교훈이 되는 구조입니다. 오늘날 비행기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 된 것은 이 ‘실패의 집단 학습’ 덕분입니다.
의료계에도 같은 문화가 있습니다. ‘M&M 컨퍼런스(Morbidity & Mortality Conference)’라 불리는 이 회의에서 의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치료 실패 사례를 공개적으로 검토합니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무엇이, 어느 단계에서 잘못됐는가”를 집요하게 묻는 자리입니다. 이 문화가 의료 사고율을 꾸준히 낮춰왔습니다.
기업의 실패를 아예 전시하는 곳도 있습니다. 2017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실패 박물관(Museum of Failure)’은 코카콜라 블랙, 구글 글라스, 할리데이비슨 향수처럼 세계적인 대기업이 야심차게 내놓았다가 시장에서 외면당한 제품들을 전시합니다. 설립자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실패를 감추면 혁신도 없다.” 이 박물관은 지금도 전 세계를 순회하며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실패를 국가적으로 기념하기까지 합니다. 알토대학 학생들이 2010년 시작한 ‘국제 실패의 날(Day for Failure, 10월 13일)’은 자신의 실패담을 공개적으로 나누는 날로, 지금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공학자 하타무라 요타로가 ‘실패학(失敗學)’이라는 학문 분야를 창시해, 실패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을 기업과 정책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은 하나입니다. 실패는 숨길 자산이 아니라 공유할 자산이라는 것. 타인의 성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축적된 실패 데이터를 통해 ‘반드시 실패하는 함정’을 피할 확률은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지금 성공의 순례길에 나서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지금까지의 실패를 기록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나만의 ‘실패 데이터베이스‘가 있습니까?
그들에게 성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였다
수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공통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성공’이나 ‘부의 축적’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훨씬 단순하고 구체적인 무언가였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문제, 불합리하다고 느낀 현실,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불편함. 그것이 그들을 밤새워 고민하게 만들었고,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성공은 그 치열한 과정 끝에 따라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해결하고 싶습니까?
자기 성찰 – 성공보다 중요한 질문
타인의 성공 비결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것, 그것이 결국 나를 앵무새로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습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내 기질이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능력이 피어나는지, 어떤 문제를 마주할 때 심장이 빨리 뛰는지. 이런 질문에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방식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이 생깁니다.
다시 서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득 채운 성공담들, 그 책들을 집어 드는 손길들. 어쩌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한 권의 책을 더 읽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성공 공식에 취해 길을 잃기 전에, 항상 나를 향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이 질문을 먼저 던지세요.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이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