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으로 사회가 떠들썩했습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4대째 이어진 의사 가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혔던 하영은, 그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남긴 인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거센 역풍을 맞았습니다. 하영은 결국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입니다. 누군가는 그 조상의 행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후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고 하는 와중에, 역사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어떻게 자기 조상의 일을 후손이 그토록 모를 수 있느냐는 지점에 대해 특히나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비난을 거두고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영의 증조부 논란이 한창이던 무렵, 성씨와 본관만 입력하면 조상 가운데 친일반민족행위자나 독립유공자가 있는지 알려주는 ‘친일파 스캐너’라는 사이트가 등장한 것도 이런 시도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뿌리를 검색하고, 결과에 놀라거나 안도하거나 혹은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또한 동행미디어 시대 같은 언론에서는 독립운동가 후손인 우정엽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모친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기고한 “그거면 됐다. 너도 힘들텐데”와 일제 군수 윤수병의 손자로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과문을 쓴 윤석윤 작가의 이야기를 싣는 등 현재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친일 문제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기사는 하영과 그녀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이야기도 친일파 후손의 사죄 이야기도 아닙니다. 폴리뷰온라인은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지금, 개인의 친일 행위 청산뿐 아니라 일제 치하에서 그들이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남긴 흔적에 관해서도 질문과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유인가 생각인가
이 문제에 관해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가 무척 높은데, 박물관 내에서 특히 붐비는 곳이 바로 ‘사유의 방’입니다. 잘 알려진 신라 시대의 유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그 공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죠. 반가사유상은 원래도 잘 알려진 유물이었지만, 2021년 방탄소년단의 RM이 자신의 작업실 책상 위에 놓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른바 ‘반가사유상 열풍’이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두 점의 반가사유상만을 위한 전용 공간을 새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같은 해 11월에 ‘사유의 방’이라고 명명한 반가사유상 전용 공간을 열었습니다. RM이 다시 이 공간을 직접 찾으면서 ‘사유의 방’은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물의 이름에 쓰인 ‘사유’와 그 공간을 지칭하는 말에 사용된 ‘사유’는 놀랍게도 서로 다른 유래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의 ‘사유(思惟)’는 중국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경전을 한자로 옮기던 고대에, 인간의 생로병사를 응시하며 진리를 궁구하는 정신 작용을 가리키던 개념을, 한자어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반가사유상을 설명할 때 이 의미를 사용합니다.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붙인 공간의 이름에 사용된 ‘사유’는 결이 다른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유’는 불교에서 사용해 온 단어가 아니라,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양의 근대 철학과 심리학을 받아들이며, 영어의 ‘Thinking’, 독일어의 ‘Denken’에 해당하는 의미로 고안해 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철학(哲學)’이라는 단어 역시 만들어 낸 19세기 말 일본의 사상가 니시 아마네가 만든 ‘사유’는 서양 사상에서 이성을 바탕으로 추론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은 우리의 교육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를 받아들인 당시 조선 지식인 사회는 일본 사상계가 만든 서양 사고 체계를 공부하고 계속해서 이어갑니다. 그런데 하필 이런 단어들이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마치 철학적 사고의 수준이 높다는 증거처럼 여겨지며 점점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유의 방’이란 이름을 붙일 때 특별히 이런 내용을 고려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박물관만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두 ‘사유’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유’의 유래에 대해 알게 된 후, 주변에 물어보는 과정에서 필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사유’라는 단어의 이런 이력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조차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쓰고 있는 말을, 평범한 우리들이 명확하게 알고 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이 있는데, 굳이 ‘사유’를
원래 우리에겐 영어의 Think, Thinking 또는 독일어의 Denken 등에 해당하는 ‘생각’이라는 순우리말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좋은 걸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처럼 ‘생각’이라는 말 하나에는 판단과 기억, 상상과 고민이 함께 들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서서히 ‘생각’은 왠지 가벼운 느낌이 드는 말로 취급하고, ‘사유’는 좀 더 무게가 있는 철학적인 용어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생각’ 대신에 한자어인 사고(思考)나 조선 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것처럼 한자어 념(念)이나 려(慮) 등을 사용해 좀 더 깊이 있는 생각 행위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는 이런 고유의 한자어들조차 ‘사유’의 인기를 따라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한 정확한 연구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생각해 봅시다” 보다는 “사유해 봅시다”를 더 지적인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담당자가 “생각의 방” 대신 “사유의 방”을 선택한 이유도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사유(思惟)’라는 말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도 자신들의 고유언어 외에 외부에서 들어온 외래어를 자신들의 언어에 편입시키며 어휘를 확장하곤 합니다. 그런 과정 자체가 한 언어의 역사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왜 생각(또는 사고)이란 오랜 시간 우리의 조상들이 사용하며 전해져 내려온 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일까가 아닐까요?
근대 이후 서양의 철학과 학문이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사유’ 같은 새로운 개념을 갖는 용어들은 당시 사회의 지식인 계층에게 먼저 전파됩니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는 ‘추상’, ‘철학’ 같은 단어들이 국내 지식인들 사이에서 마치 자기를 지식인으로 알릴 수 있는 하나의 표식으로 여겨진 것은 아닐까요?
물론 이런 지적 허영심에서 시작된 행위를 친일이라는 행위와 나란히 저울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영의 증조부가 선택한 부역은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이익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고, 대다수가 사유라는 말을 쓰는 많은 사람은 스스로 선택했기보다 단지 사회적 관습을 물려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행위가 갖는 책임의 무게로 따져도 이 둘은 애초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더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부역자의 이름은 훗날 역사 앞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으로 남았습니다. 반면 침략자가 남기고 간 말의 흔적은, 우리가 가장 아끼는 문화재를 지금도 둘러싸고 있습니다. 하나는 청산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품격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친일의 틀은 개인에게만 씌워야 하나
친일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범인을 잡듯 누가 잘못했나를 찾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큽니다. 물론 누가 일본에 협력했고, 권력과 부를 얻었고, 독립운동가를 탄압했는가 같은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들을 찾아내서 잘못된 과거사를 단절하는 노력은 중단없이 실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와 사회적 인식 같은 구조적 이슈에 새겨진 오점들은 몇몇 잘못된 사람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운다고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식민 지배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땅만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상대는 그들의 사고와 인식 방식을 가져와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뒤집고자 시도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기에 우리가 지배당하는 동안 일제 세력이 우리의 정신과 역사에 낸 흠집들에 관해 배우고, 알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것도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노력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한자 교육 제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으로 생긴 현상은 한때 국어 교과의 일부였던 한문 과목이 1970년대 이후 서서히 독립된 선택의 영역으로 밀려나더니, 2011년 교육과정 개편에서는 고등학교 한문마저 필수에서 선택 과목으로 다시 내려앉게 됩니다. 문제는 다양한 질문과 진지한 토론 없이 진행된 이 흐름은, 오히려 우리가 이미 천 년 넘게 사용해 오며 우리 언어가 된 많은 말의 의미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근대 이후 흘러들어온 일본식 한자어들을 걸러내는 데도 실패합니다. 예를 들자면 그보다 많거나 같다는 뜻을 지닌 이상(以上)과 정상과 다름을 뜻하는 이상(異常), 그리고 최고의 상태를 뜻하는 이상(理想)이란 단어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한자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구분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유의 방’ 앞에서
국립박물관이 붙인 ‘사유의 방’은 무척 중요한 공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선조들의 시간을 마주하는 행위는 많은 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의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우리는 왜 공간에 붙인 이름이 ‘생각의 방’이 아니라 ‘사유의 방’인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 ‘사유’란 단어가 이 상황에 더 정확해 보이기 때문일지, 아니면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고 느껴져서 인지를 말이죠. ‘생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무게가 줄어든 것처럼 여겨질까요?
사실 반가사유상은 6~7세기 무렵의 조각 작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오랜 시간의 증거 앞에서 근대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 전해진 특정 언어를 마주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것도 다름이 아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말이죠. 만약 이 단어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지식인들의 선호로 인해 마치 더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말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역사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공간에서 이처럼 무심코 쓰이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기사를 통해 ‘사유’라는 단어를 지금 당장 걷어내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한 연예인을 향해 역사에 해박한 지식인을 자처하며 상대에게 “어떻게 조상의 일도 모르냐”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가장 소중하게 보여줘야 할 국립중앙박물관이, 그것도 가장 인기 높은 공간의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에 전해진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을까요?
왜 우리 사회가 이런 단어의 사용을 우리 고유어를 사용할 때보다 더 지적이고 수준이 높다고 여기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요?
하영의 조상 문제로 온 사회가 떠들썩할 만큼 식민지 정책과 관련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특정 개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에 관해 잘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특정 기간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생각이라 부르고 무엇을 사유라 부르는지, 그리고 누가 우리의 생각에 특정한 단어를 주입해 ‘깊이’와 ‘격’을 부여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생각에서 탄생한 사랑
사실 ‘생각’이라는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정서처럼 상대를 향해 따사로운 온기를 풍깁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행위, 곧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잘 지내는지, 어려운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를 헤아리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의 좋은 모습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족한 점도, 상처도, 그가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과거까지도 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다 보니 한 단어가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 애정어리고 따뜻한 우리말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어원에 ‘생각하다’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5세기 전후 문헌에서 발견되는 사랑은 초기에 좋아하다와 생각하다 라는 뜻으로 두루 쓰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말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의 입과 삶 속을 오가며 서서히 우리 몸에 체화되지만 반대로 어떤 말은 특정 시기 특정 세대의 선호로 인해 뭔가 ‘있어 보임’이라는 기호로 사회에 번져나가게 됩니다. 어쩌면 사유가 바로 그런 말일지 모릅니다.
물론 ‘사유’를 쓰면 친일이고, ‘생각’을 쓰면 아니다 같은 이분법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생각에서 사랑이 만들어진 것처럼 수많은 생각과 말이 섞이고 사회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 쓰고 있는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어떤 특정 말을 더 고상하고 수준 높다고 여기는지 일 것입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 사용해 오며 그 개념을 체화한 우리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요?
상대를 비난하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오점을 극복하는 것은 단지 계속해서 처벌받을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만이 아닐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형성된 현재 우리의 습관과 문화 속을 다시 뒤지며 미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오점들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질문하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을 찾게 된다면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우리 안에 무엇이 남겨져 있고, 무엇을 바꿔 나가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