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명품처럼 되어버린 아파트에 관한 한국 사회의 욕망을 묻다
여러분은 곧 가격이 오른다는 뉴스를 듣고 명품 매장 앞으로 달려가 구매를 위해 긴 줄에 동참해본 경험이 있는가? 몇백 또는는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백을 사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혹시 로또가 되어버린 일부 인기 아파트 청약 현장이 떠오르지 않는가?
오랜기간 한국에서 벌어진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논쟁은 늘 동일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부동산 건설 관련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금융 규제와 세금 정책을 통해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반목하거나 동조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렇게 진자 마냥 양극단을 왔다갔다하기만 하는는 정책 덕분에 시장은 어떤 정부 정책이 발표되어도 요지부동이다. 2025년 말에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는 뉴스에 우리는 또다시 불만에 사로잡힌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아파트는 정말 단지 머무는 공간일뿐인가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가구 총자산의 70.5%가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수치를 보며 우리는 “한국인이 부동산에 너무 집착을 한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캠페인을 펼치지만 많은 사람들의 귀에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뭔가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짜리 핸드백이 넘쳐난다. 사진으로 봐서는 명품백과 큰 차이가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기능적으로는 오히려 유명한 명품백보다 더 사용하기 편리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에르메스나 샤넬 매장 앞으로 달려가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왜일까?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드러내는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혹시 아파트도 한국인들에게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부 지방 도시에는 미분양 물량이 쌓여가고, 서울에서도 빌라나 단독주택 같은 저렴한 대안이 존재하지만, 한국인들은 더 비싼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자신에게 허용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매물을 향해 달려간다. 마치 명품 매장에 달려가듯이.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머물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어떤 특수한 의미로 인식되는 독특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표준화된 욕망의 아이러니
해외의 상황과 달리 한국 아파트만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극단적일 정도로 표준화된 구조이다. 국민 평수라고 지칭하는 특정 크기, 거의 유사한 공간 구조, 심지어 시기별 유행에 따른 거의 획일화된 인테리어까지. 개성을 드러내고 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한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한 이 획일적인 특징이, 역설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쉽게 각 개인의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윌 스토어는 저서 『지위 게임』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고 과시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아파트는 이 지위 게임을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장치가 아닐까? 누구나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어느 동네 어느 단지 몇 평짜리 아파트’의 가격격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내부를 어떻게 꾸몄는지, 어떤 가구를 들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주소와 평수만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 마치 특정정 명품백을 드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듯이 말이다.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전적으로 이런 시스템을 수용하며 심지어 그 시스템 내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공급의 역설, 혹은 명품의 법칙
정부는 매번 ‘공급 확대’를 외친다. 주택 부족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단순한 논리에서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에르메스나 샤넬이 아니라 그저 그런 브랜드의 가방이 지금보다 공급이 10배 더 늘어난다고 명품백의 가격이 하락하게 될까?
명품 브랜드는 독특한 수요층을 만들어 낸다.폴란드 출신의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명품 산업이라면 수요를 그저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명품 산업은 자신만의 수요를 창출한다!.”
그렇다. 명품을 쫓는 사람들은 다른 상품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의 구미를 당길 바로 그 명품에만 집중을 한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단순히 수치적으로 공급을 늘리는 것은 아무런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로 그 아파트를 늘리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는 특정 지역에 특정 형태로 존재하는 희소성을 필요로 하는데 어떻게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능할까? 공급을 늘려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허무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세대를 가르고 계층을 나누는 벽
부동산 문제는 이제 단순한 경제 이슈를 넘어 세대 갈등과 계층 갈등의 핵심이 되었다. 부모 세대는 노력과 저축으로 집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 세대에게 지금의 아파트 가격은 평생 모아도 닿을 수 없는 숫자처럼 느껴진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군 프리미엄’으로 대표되는 교육과 주거의 결합이다. 좋은 학교가 있는 지역의 집값은 더욱 치솟고, 그곳에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곧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경제적 자본이 자녀의 교육 자본이 되고, 이는 다시 다음 세대의 경제적 자본으로 재생산된다.
우리는 이 굴레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아니, 정말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집값 대책이 없다는 답답함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 5일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때문에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보니까 대책이 없어요. 땅은 제한돼 있고 사람은 몰려들고…”라고 말했다.
그렇다. 대통령이 그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로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복잡하다. 그런데 그 복잡한 문제를 정책입안자들은 단순한 시장 논리로만 접근하려고만 한다. 대통령은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 이후에 국토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역시 복잡한 문제이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정책을 펼치지 않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결국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스템의 유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은은 아닐까?
질문을 바꿔야 할 때
한국 부동산 정책이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우리가 진실을 외면한 채, 잘못된 질문만 반복적으로 던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공급을 늘리고 어떻게 국토 균형 발전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왜 우리는 이토록 아파트에 집착하는가”를 진정으로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집값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집이 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느 지역에 얼마나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특정 장소에 모든 것을 거는 삶을 선택하게 만드는가”를 되돌아 봐야한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집은 단순히 부동산이라는 자산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욕망과 불안, 계층 구조와 세대 갈등, 교육 시스템과 자산 불평등이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매듭이다. 이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실들이 어떻게 꼬여있는지를 정확하게 살펴봐야 한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장소는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정말 ‘집’인가, 아니면 ‘지위’인가? 혹은 둘 다인가?
이 불편한 질문들을 진실되게 마주할 수 있을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