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가 1990년대 초 “정보 초고속도로”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을 때, 그 고속도로가 실제로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터넷은 지식 민주화를 위한 혁명적인 원동력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수십 년간의 군사 통치에서 벗어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투명성과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도구로 인터넷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연결성이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1인당 소셜 미디어 사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메일과 게시판부터 페이스북(2004년), 트위터(2006년), 인스타그램(2010년), 틱톡(2016년)에 이르기까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미래를 약속해 왔습니다. 2008년 가트너는 이를 “초연결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연락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저는 데이트 중인 한 커플이 말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음식이 도착하자 사진을 찍고, 게시하고, 한 입 베어 물기 전에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그들은 함께 있었지만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초연결 시대의 완벽한 축소판이었습니다.
이러한 초연결은 그 자체로 역설적입니다.
약속
소셜 미디어는 수동적인 시청자들을 “프로슈머”, 즉 콘텐츠를 소비하고 제작하는 능동적인 참여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그리고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한때 동네 카페에서 끝나던 대화는 이제 대륙을 넘나듭니다. 관심을 끌 수 있는 능력 외에는 어떤 자격도 요구되지 않는 완전한 크리에이터 경제가 등장했습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전 세계 십 대들이 가장 갈망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관계를 재정의했습니다. 전 세계 친구들은 다시 연결되고,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일상을 공유하며, 낯선 사람들은 공통된 관심사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형식적인 관습은 사라지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자신, 또는 우리가 선택한 우리 자신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대가
하지만 창의성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은 동시에 관심을 끌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기도 합니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스크롤링하게 만들고, ‘좋아요’와 댓글의 도파민 러시에 중독되도록 설계된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많은 사용자가 매일 두 시간 이상을 소셜 앱에 소비하며,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불안감을 호소합니다.
온라인에서 “친구”가 많아질수록 오프라인에서 진정한 관계를 맺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도 전에 사진을 찍습니다. 연인들은 떨어져서 스크롤하며 함께 앉아 있습니다. 오늘날 콘서트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어 올립니다. 최근 한 친구는 스크린으로 축제 전체를 관람했지만, 그 영상을 다시는 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지 못한 추억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우리는 사진을 찍는 데 너무 바빠서 그 순간을 경험하거나 옆 사람과 공유할 겨를이 없습니다. 친밀감을 조성해야 할 것이 오히려 거리를 만듭니다.
그러는 동안, 엄선된 완벽함이 기준이 됩니다. 피트니스 인플루언서 에세나 오닐은 2015년 인스타그램을 그만두면서 자신의 “완벽한” 게시물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혔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수백 번을 찍고, 해변 사진을 찍기 전에는 굶고, 미소로 가려진 극심한 불안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입소문을 탔지만, 비교 문화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외모는 포토샵으로 조작되고, 라이프스타일은 과장되고, 성공은 정교하게 포장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온라인 페르소나에 환멸을 느끼지만, 의심을 키우는 바로 그 플랫폼에서 답을 찾으려 애씁니다.
선택의 문제
플랫폼 자체는 선이나 악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과 취약성을 반영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를 연결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그 영향력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처럼 고립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보를 의미하는지, 쇠퇴를 의미하는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집단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이러한 기술들을 우리 삶에 어떻게 통합할지에 달려 있습니다.
자유 의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행사하느냐 마느냐입니다.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길고 지루한 대화 중에 친구와 눈을 마주친 것은 언제였나요? 목적 없이 휴대폰을 확인하는 빈도는 얼마나 되나요? 마지막으로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 생각에 잠긴 것은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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