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밀어낸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다양한 문화계 소식들이 단풍처럼 우리 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음악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유럽 최고의 교향악단들이 지휘계의 거장과 번갈아 펼치는 내한 공연이라면 미술팬들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의 뉴스에 귀를 쫑긋 기울이기 시작한다. 별처럼 반짝이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과 간혹 낯설게 다가오는 신진 작가들의 도전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은 아트 페어가 열리는 도시의 공간을 가득 매우며 미술 애호가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서울에서는 미처 가을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뜨거운 공기가 가득 차 있던 지난 9월 4일에서 9월 7일까지 4일간 삼성동 코엑스에서 년 중 최고의 아트 페어가 열렸다. 영국 아트 페어 주관사인 프리즈가 주관하는 프리즈 서울과 한국 화랑 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KIAF 2025는 한국 미술 시장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8만 명의 관람객을 모아서 나름 선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2022년부터 시작한 프리즈 서울은 한국 미술계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던 역량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과시했다. 올드머니들의 잔치였던 한국의 아트 페어 풍경이 이들의 등장과 함께 MZ들이 센터스테이지를 점령해버린 마치 힙합 스타들의 샴페인 파티 같은 화려한 영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런 아트 페어와는 결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유행과 작품의 가격에 예민한 대중적인 미술팬과 달리 훨씬 더 진지한 미술 애호가들의 허기진 호기심을 달래주는 비엔날레로 불리는 미술계의 행사도 있다. 이름 그대로 2년에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비엔날레인 광주 비엔날레는 2024년에 개최된 까닭에 2025년에는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두 행사를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예전에 한 미술 애호가로부터 받았던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아트 페어와 아트 비엔날레는 뭐가 다른 건가요?”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동일한 질문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진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은 궁금하게 여겼을 이 질문을 다양한 관점으로 비교하며 차이점을 알아보았다.
두 개의 타워, 각각의 기원
미술계를 대표하는 이 두 행사는 각각의 방식으로 동시대를 관통하는 미술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사의 본질인 모습에서는 서로가 극과 극을 이룬다. 한쪽은 활기가 가득한 트렌드와 패션이 넘치는 광장이라면, 다른 한쪽은 우리시대의 중요한 사유들을 미술이란 장치를 통해 외치는 일종의 ‘선언’ 행위와 같다. 즉 한쪽이 떠들썩하고 즐거움 넘치는 쇼핑 공간이라면 다른 쪽은 철학적 질문과 답을 찾는 사고 실험이 행해지는 좀 더 고요한 실험적 공간인 셈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특징을 갖으며 발전해 온 이 두 행사가 왜 태생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해 각각의 기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본질적으로 ‘장터’의 성격을 갖는 아트 페어는 그 기원이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중세 후기 유럽의 활발했던 교역 시장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향신료에서 직물까지, 온갖 상품이 거래되던 대규모 상설시장에 그림이나 조각 같은 장식적 기능을 가진 예술품이 점차 포함되기 시작하면서, 근대로 넘어선 이후에는 작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미술품을 직접 주문하는 후원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 시장이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확장되면서 점차 ‘판매를 목적으로 한 집단 전시’라는 개념이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 들며 드디어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유사한 모습의 아트 페어가 등장한다. 이들 중에 특히 쾰른과 바젤에서 열린 아트 페어가 큰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한다. 미술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 시장의 중추인 아트 갤러리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보유한 고객을 넘어 새로운 고객층이 필요하게 된다. 미술 시장 특징상 판매하는 상품(미술 작품)의 다양성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의 특정 고객에게 유사한 작품을 반복해서 권유하는 방식으로는 확장성에 명확한 한계가 그어져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좀 더 넓은 시장에 소개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수집가 입장에서도 동일했다. 세상엔 수 없이 많은 갤러리가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 그 모든 갤러리를 실질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척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하는 쪽과 구입하는 쪽 모두 단기간 동안 양측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실질적인 욕구를 바탕으로 시작된 아트 페어는 곧 시장 참여자 모두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초대형 장터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1970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한 ‘아트 바젤’은 전세계의 다양한 아트 페어 중에 최고로 꼽힌다. 마이애미, 파리, 홍콩 등 여러 도시로 확장을 거듭하며 글로벌 수집가라면 누구든지 한 번은 가고 싶은 미술 행사로 성장했다.
반면, 비엔날레의 시작은 상업적인 측면과는 거리가 멀다. 최초의 비엔날레로 여겨지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베니스에서 베니스 시립 국제 미술전(I Esposizione Internazionale d’Arte della Città di Venezia)이란 명칭으로 시작되었다. 이 행사는 곧 매 홀수 년 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도시 베니스에서 열리는 현대 미술 최고의 행사로 성장하게 된다. 1895년의 첫번째 미술전은 당시 이탈리아의 국왕 움베르토 1세 부부가 예술을 통해 이탈리아의 국가적 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첫 해부터 2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게 되면서 전세계 미술계에 비엔날레라는 새로운 전시 형식을 전파하게 되었다. 이후 각국의 비엔날레는 특정한 주제를 놓고 각국의 대표 작가들이 펼치는 작품 비교 전시라는 기획으로 발전해 나가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사실 이 비엔날레라는 행사는 19세기 말 유럽을 휩쓸던 ‘세계박람회’라는 새로운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었다.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세계박람회’는 근대화를 통해 과학기술의 진보와 경제적 성장 양면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서유럽 국가 간의 경쟁의 장으로 자리를 잡으며 19세기 말에 확고한 지위를 점유하게 된다. 이렇듯 유럽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의 문화와 기술을 뽐내고자 했던 세계박람회란 형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탈리아는 당시 유럽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은 관광지였던 베니스란 도시에 예술이란 콘텐츠를 바탕으로 색다른 박람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오늘날까지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며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견고하게 이어가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오며 서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더 뛰어난 문명화 단계에 도달했음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었고 이런 욕구는 기술과 경제력을 과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화적 우수성의 과시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오늘날에는 고급 관광 자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앞다퉈 개최하고 있다 보니 원래의 의미가 조금씩 퇴색하며 형식에 치우친 일종의 선전 이벤트화 되어가는 느낌도 강하다. 한국에서도 광주를 필두로 몇몇 도시들이 2년마다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파티의 주인공들은 누구인가?
이렇게 서로 다른 유래를 가진 이유로 비엔날레에서는 아트 페어와 달리 상업성이 강한 미술 갤러리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즉 비엔날레에서는 ‘시대정신’을 해석해 거대한 전시를 엮어 나가려는, 다소 신비한 권위를 부여받은 큐레이터 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비엔날레에서는 판매라는 시장 기능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적 담론을 미술 작품을 통해 드러낼 수 있어야 하기에 각 비엔날레들은 전시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의 선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주최측이 설정한 특정 주제에 맞춰 참가국들은 국가별로 개별 전시관을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며 각국의 개별 전시관 역시 각국의 문화 담당 부처에 의해 선별된 큐레이터 들이 작가와 전시 작품 선정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각 행사별로 주요 참가자들이 어떤 특징을 지닌 사람들인지 살피는 것 역시 이 두 행사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아트 페어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부터 살펴보자. 마케팅 전략에 따라 행사장 부스의 위치 선정부터 신경전을 펼치는 노련한 아트딜러인 갤러리 관계자부터 넉넉한 예산을 들고 마치 사냥군이 목표를 고르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들을 살피는 전문 수집가, 그리고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려는 아트 어드바이저 까지가 아트 페어의 주연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정판 스니커즈와 뉴욕이나 밀란의 패션위크에서 각광을 받은 브랜드 의상으로 무장을 한 이들은 샴페인의 보글거리는 소리 사이로 은밀한 대화들을 이어간다. 이들 모두의 목표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멋진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도파민이 선사하는 강렬하고 짜릿한 자극을 맛보고자 하는 모두의 욕망은 아트 페어의 공간을 예술이 상업적 가치로 환원되는 치열한 승부의 장으로 탈바꿈하게 만든다.
물론 아트 페어라는 무대에 이들 주연 배우들만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목적과 목표를 지닌 수많은 조연들이 이들을 둘러싸며 이 거대한 상업극을 완성시켜 나간다. 어드바이저와 아트딜러를 따라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잡으려는 신규 진입자들, 미술 자체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시간을 투자한 일반 관람객, 미술계의 유명인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 거기에다 미술 시장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작품을 배경으로 완벽한 ‘샷’을 남기려는 인플루언서들까지.
어쩌면 미술 시장이 럭셔리 패션 시장을 새롭게 대체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일까?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아트 페어에서 유행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우며, ‘환금성’이 높은 작품들이다. 새로운 아트 마켓의 트렌드를 읽고, 떠오르는 신인 작가를 발견하며, 시장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이와 반대로 앞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것처럼 비엔날레의 공간은 큐레이터와 예술가, 비평가가 주도권을 쥔다. 주 관객층 역시 달라진다. 아트 페어에서 주요 관객인 수집가들이 빠르게 훑고 투자 가치가 높은 작품을 ‘확보’하는 것을 중시한다면, 비엔날레의 관객은 작품마다 긴 시간을 투자해 각각의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개념들을 곱씹는데 여념이 없다.
큐레이터는 전반적인 전시의 방향을 설정하고, 작가를 선정하며, 작품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어내는 역할을 한다. 작가들 또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가끔은 이런 방향이 지나쳐서 ‘시대정신’을 해석해 거대한 전시로 엮는다는 형식에 치우친 신비로운 권위를 만들어 내려는 비엔날레들도 등장한다. 이들은 종종 스스로를 몰이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오히려 권위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스스로들을 씬(미술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비엔날레의 주연들은 이런 내용적인 면뿐 아니라 자신들의 외모까지 아트 페어 공간의 등장인물들과 차별화 하고자 노력한다. 검정 계열의 수수한 단색 차림으로 뭔가를 끊임없이 메모하는 노트를 손에 쥐고 있다.
물론 비엔날레의 주요 관람객은 이런 사소한 문제들과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가격’과 ‘인기 순위’ 같은 자본주의적 개념보다는 ‘사유’라는 철학 인문학적 개념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작품의 의미를 탐구하고,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가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종종 난해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비엔날레의 작품들은 관객에게 미학적 감동뿐 아니라 지적인 도전 과제도 함께 던지는 셈이다. 즉 비엔날레의 공간에서는 ‘구매’ 대신 ‘관람’이 그리고 ‘트렌드’보다는 ‘미래’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프레임: 장면의 본질
이런 극단적인 성격 차이는 당연히 전시되는 작품의 유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트 페어에서 전시되는 대부분의 작품은 여전히 회화가 주를 이룬다. 아트 바젤과 스위스 금융기관인 UBS의 후원으로 매년 발간되는 가장 권위있는 미술 시장 조사 자료 <Art Market>에 따르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년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전체 작품 중 약 70% 이상이 회화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진과 판화 등이 각각 10% 전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조각 및 설치, 미디어 아트 등 그 셋을 제외한 모든 미술 형식이 겨우 10% 남짓의 시장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거래의 주를 이루는 이들 주요 장르를 제외한 나머지 미술 장르의 작품들은 겨우 10% 남짓의 시장을 목표로 하게 된다. 시장논리에 의해 당연히 아트 페어에서는 회화 작품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게 되며 그 다음으로 사진과 판화 작품들이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 회화와 사진 및 판화 같은 전통적인 형식은 더 이상 현대의 동시대적 담론을 담아낼 작품으로 충분치 않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비엔날레의 공간에는 이들 회화나 사진 보다는 좀 더 거대한 공간적 형태를 지닌 설치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런 차이점들 때문에 아트 페어에서는 작품을 보며 가격이 얼마인지 묻고, 비엔날레에서는 작품이 표상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이다.
마치며
이렇듯 아트 페어와 비엔날레라는 미술계의 두 행사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미술을 대하는 서로 다른 참여 집단 각각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본질에 있어서 서로가 극과 극을 이루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쪽(아트 페어)이 활기가 가득한 트렌드와 패션이 넘치는 광장이라면, 다른 한쪽(비엔날레)은 동시대의 중요한 사유들을 미술이란 예술적 장치를 통해 외치는(선포하는) 일종의 ‘선언’ 행위와 같다.
물론 많은 미술 애호가들은 아트 페어와 아트 비엔날레 둘 다를 보러 간다. 하지만 아트 페어를 보러 갈 때의 태도나 마음가짐과 비엔날레에 갈 때의 태도나 마음가짐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트 페어와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계라는 거대한 몸을 이루는 두 개의 심장이다. 하나는 역동적인 상업적 흐름을, 다른 하나는 시대정신을 담은 지적 담론을 생산한다. 가을의 문턱에서, 이 둘 사이의 흥미로운 간극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훌륭한 예술 탐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