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만 바꾸면, 정말 달라질까?

서논술형 대입 제도 변환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입니다

대입 제도를 둘러싼 개편 논의가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5일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밝힌 오지선다형 수능 체제가 사실상 한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은 이미 서·논술형 평가에 관한 선호를 밝혔던 대통령의 현재 객관식 시험 방식을 계속 끌고 갈 이유가 있겠냐는 동의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논쟁의 한쪽 주장은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객관식 문제 풀이 훈련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이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이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찾는 시대에, 정답을 고르는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이 이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세계적인 추세와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는 정작 인공지능 시대에 중요한 것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기 때문에, 객관식 시험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설계해서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객관식 시험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객관식 시험 자체가 창의력이나 판단력을 키우지 못하는 시스템이란 사실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폴리뷰온라인은 이런 제도 변화에 대한 요구 앞에서 과연 시험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 우리 교육 제도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 개선하려는 교육 제도의 방향이 과연 한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연의 목적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개선 방향이 설사 최선이라 할지라도 현재 우리 사회가 수용 가능한 것인지에 관해 고려했는지 등 총 3개의 틀에서 묻고자 합니다.

줄 세우기가 낳은 태생적 한계

서·논술형 시험 도입 주장의 주요 명분은 ‘학생의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 함양’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은 시작부터 본질적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 제도 자체의 태생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까요? 우리 사회에 고착된 대학 서열화 문제는 어떤 시험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학생 사이의 우열을 가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또한 서·논술형 문항의 채점이 갖는 주관성에 대한 불안도 무척이나 높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표준화된 채점 지표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될 것일 텐데, 표준화된 채점 방식이 정해진다면 그에 맞춰 고득점을 올려주겠다는 사교육 시장이 등장할 것이고, 또다시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학생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을 제시하기보다 사교육 시장에서 만들어 낼 ‘감점당하지 않는 안전한 답변’과 ‘출제자가 선호하는 모범 답안의 문장 구조’ 등을 기계적으로 모방하기에 급급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된다면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목적으로 한 서·논술형 시험 제도 도입이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줄 세우기’ 같은 관성적 사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여유를 갖추지 못한다면, 서·논술형 평가 방식 역시 단지 세련된 정답 고르기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창의력이란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라는 방향성을 주장하는 주체가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미 사회적 성취를 이룬 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억지 주장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의 문제를 꿰뚫어 보고 있으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성공한 사람들’ 상당수는 사실 우리 사회의 가장 표본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성취는 남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평균적인 하지만 그중에서 무척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뛰어난 평균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창의력의 정체가, 창의력의 본질인 진정한 ‘다름’이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요? 혹시 이들은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인 ‘모범적인 논리 전개’와 ‘세련된 어휘 구사’를 창의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우리 사회가 진정한 창의력을 가진, 그래서 그 다름으로 인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힘든 구조라면, 그토록 강조하는 ‘창의력 함양’이 또다시 다름이 아닌 지적 우수함을 추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유럽의 상황과 우리의 현재

한국에서 서·논술형 시험을 언급할 때 많이 언급되는 IB를 비롯한 다양한 유럽의 주관식·서술형 대입 제도가 학생들의 자율적 탐구와 차별화된 생각 능력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은 단지 시험 시스템의 우수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배후에 숨겨진 이 같은 시스템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토양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보통 대학 진학률이 높아야 4~50%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계, 법조계, 의학 등 특수한 부문이 아니라면 어떤 대학을 졸업했다는 점이 반드시 더 선호되지도 않습니다. 이에 더해 대학도 오랜 기간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해 왔고 이런 과정을 바탕으로 대학 수준을 유지해 온 역사가 있기에 학생 선발 시스템의 공정성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예로 영국의 명문 대학인 옥스브리지의 경우를 보면 단지 IB 점수가 높다고 무조건 입학 허가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유럽처럼 사회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적합한 인재를 선별하는 방식을 인정하는 상황이라면 서·논술형 시험처럼 객관식에 비해 채점에 편차가 생길 수 있는 시스템 역시,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별 학생의 독창성과 창의력 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인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독자적인 시스템을 쌓아 온 그들과 달리 우리는 미국식 표준화 시험을 바탕으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생이 높은 순위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논술형 시험이 정말로 누가 더 다양한 사고를 하는지를 중요하게 판별할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될까요?

서·논술형 시험의 선결 조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관적 평가가 될 수밖에 없는 서·논술형 시험 구조는 평가 권한에 대한 절대적인 사회적 신뢰를 요구합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교사가 학생의 글과 사고 과정을 관찰하고 내린 정성적 평가를 학부모와 사회가 온전히 신뢰하고 수용하는 포용적 문화가 형성되어 있을까요? 동시에 과연 현재 현직에 있는 교사들이 이와 같은 평가를 할 충분한 훈련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이런 부가적 업무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에 관해서도 동시에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현재 교사들은 강의 및 강의 개발 외에 많은 행정적 업무를 맡고 있으며, 예전과 달리 이런 업무의 과중으로 교사직의 인기가 날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교사 업무에 관한 전반적인 조정 및 개선 없이 새로운 시스템 도입만을 고려하는 것은 문제만 더해질 소지가 커 보입니다.

고교 졸업생의 70% 가까이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사회에서, 교사의 서술형 평가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송과 민원이 빗발치게 된다면 외형적으로 아무리 우수한 시스템이더라도 우리 사회에 온전히 수용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사회적 안전망과 신뢰 자본이라는 토양은 외면한 채, 겉으로 보이는 선진 평가 기술만을 무턱대고 이식하려는 시도에 그친다면, 서·논술형 시험은 결국 또 다른 사회적 비용과 불신만을 낳지 않을까요?

공정성의 덫과 미국 사례

우리와 가장 유사하게 대학 서열과 정성평가를 결합해 온 미국의 또 다른 사례 역시 우리에게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정책분석센터(CEPA) 연구진이 2016년 대학 지원자 6만 명이 제출한 에세이 24만 건을 분석한 결과, 표준화된 객관식 시험(SAT) 점수보다 지원자가 작성한 에세이의 내용과 문체가 가구의 소득 수준과 훨씬 더 강력한 상관관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는 주관식 시험 역시 가정의 소득 수준을 바탕으로 한 고액의 1:1 맞춤형 과외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주관적 평가를 둘러싼 불투명성과 편향 시비는 대규모 입학 비리 및 사법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지적한 우려가 미국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세이 점수가 보여주는 소득 편향과 입학 비리 문제는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하나의 뿌리로 내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표준화되지 않은 평가 요소일수록 재량의 여지가 넓어지고, 그 재량의 여지만큼 자원을 가진 쪽이 우세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객관식 시험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하는 서·논술형 평가가, 실상은 경제력 있는 계층에게 훨씬 유리한 프리미엄 사교육 시장을 양산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위 인플레이션과 ‘청년 목수’

평가의 기술적 방식을 다투기 전에 정작 마주해야 할 교육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다수 한국 학생에게 과연 오늘날 대학 학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막대한 사교육비와 4년의 등록금을 쏟아부어 대학 학위를 취득한 청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졸업 후 다시 목공, 도배, 타일 시공과 같은 현장 기술을 배우기 위해 직업 훈련소로 향하는 현상을 되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대학 학위가 더 이상 안정된 노동시장 진입도, 지적 성취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에, 왜 모든 청소년이 획일적인 대학 입시라는 과정에 진입하는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해 볼 때가 아닐까요?

대학 진학이 학문적 열정이 아닌 사회적 낙오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고비용 방어막으로 전락하고 있다면, 이 거대한 사회적 낭비의 원인은 단지 시험 문제의 형식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급한 것은 시험 제도의 변환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학벌 만능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고정 관념을 바꾸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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