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나는 몰랐다’는 말 뒤에 숨겨진 질문

메타인지와 모른다는 것을 아는 능력

최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 측이 여러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식약청 로비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후보자는 “문과 출신이라 나는 몰랐다.”라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았다. 물론 어떤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시대에는 해당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조차 새롭게 등장한 기술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는 지식인에게 필요한 바람직한 덕목일 것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해명을 보면서 몇 가지 궁금함이 떠올랐다.

“나는 몰랐다”라는 주장이 정말 ‘뭔가를 모른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한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즉 뭘 모르는지 모르면서 몰랐다는 해명을 한다면, 그 해명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무엇을 모른다’라고 하는 주장에 담긴 의미는 일차적으로 “특정 분야에 관해 충분한 지식이 내게 없었다.”라는 것인데, 많은 사람은 “내가 몰랐기 때문에, 내가 한 행동에 난 책임이 없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마치 “내가 몰랐기 때문에, 내가 한 행동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렸다.

‘모른다’에 담긴 부차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한 행동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해당 행동을 하기 위해 근거를 판단하고 그 결정에 따라 진행한 행위 과정이 정당하다’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어떤 행동의 결과에 ‘몰라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라고 인정되는 상황이 있다면 흔히 촉법소년이라고 부르는 “형사미성년자” 같은 경우일 것이다. 즉 14세 미만은 사회 통념적으로 사리 분별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다.

여러분은 법무부 장관이라는 ‘법’을 집행하는 막중한 업무를 맡을 책임자가 “나는 몰랐다. 그래서 나는 책임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떻게 들리는가?

진정한 메타인지는

우리가 옛 성인이라고 부르는 소크라테스와 공자가 전하는 말 중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생각은,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와 흡사하다. 이 개념은 현대에 오면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살펴보는 능력을 뜻하는 메타인지란 단어로 연결된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판단을 점검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나 X 등에서도 ‘메타인지’란 단어는 흔하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이 ‘메타인지’란 단어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은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 주변에서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이건 내가 잘 모르는 분야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린 후, “잘 모르지만 아마 괜찮겠지.” 또는 “다들 이렇게 하니까 괜찮겠지.”라며 무마하던지, 또는 누군가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알아보지 뭐.”라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메타인지는 단순히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 알아차리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판단과 행동을 그에 따라 다르게 가져가야 하는 것까지일까?

모름을 선택하는 것

여기서 모른다는 주장의 또 다른 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모르고 있는 편이 책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알고도 하지 않았다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고, 뭔가 지금까지 관례로 했던 방식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모름을 선택하는 ‘전략적 무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행동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채 행동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행동을 멈추고, 자기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이걸 이대로 진행해도 될까?”라든지 “책임 회피를 위해 모른 척하고 있다가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같은.

앎과 모름을 다루는 방식

모든 걸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장관이라고 해서 의학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라고 해서 법률을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존재하고 제도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를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이다. 모르면 묻고, 확인하고, 필요하면 멈추는 것. 그것이 진정한 책임을 갖는 행동일 수 있다. 반대로 앞서 말한 전략적 무지처럼, 모른 채로 있는 편이 편리해서 굳이 확인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건 단지 모르고 한 행동을 넘어서는 책임을 낳는다. “나는 몰랐다”라면서도 자신의 위치와 관계를 이용해 어떤 일을 움직였다면, 이 상황은 ‘형사미성년자’ 사례처럼 몰랐기 때문에 책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위치가 높은 경우엔, 더더욱 몰랐다는 사실로 책임을 면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걸 아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며, 그 경계를 넘는 순간 “여기부터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확인하고 진행합시다.”라고 ‘모른다’는 사실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으려는 자세일 것이다.

AI가 답을 내는 시대

AI에게 질문하면 짧은 순간에 그럴듯한 답이 도출되는 지금 시대에는 앎과 모름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할지 그리고 그 구분을 근거로 어떻게 행동할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AI에게 답을 얻는 것과 그 답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요구되는 능력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모르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스스로 묻는 능력일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말은 얼핏 멋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무척 불편한 말이다. 우선 내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아무리 메타인지가 유행이더라도 스스로 모른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물어야 하며, 지금까지 내린 판단을 다시 돌아봐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모르면 물어볼 수 있을까? 다시 확인하고 결정을 미룰 용기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행동했다면, 그 행동의 결과에 책임질 수 있을까?

어쩌면 ‘생각하는 힘’은 많이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앎과 모름의 경계를 구분하는 순간, 잠시 멈춰서 스스로 어떻게 행동할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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