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영상 편집 플랫폼 카프윙(Kapwing)이 발표한 조사 결과가 한국의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AI로 생성된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slop)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국가로 나타난 것이다. 가축의 오물을 뜻하던 슬롭이 이제는 인공지능이 무분별하게 생산하는 저질 콘텐츠를 뜻하는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국가별 인기 유튜브 채널 상위 100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AI 슬롭 채널 누적 조회수는 약 84억 5,000만 회로 2위 파키스탄(53억 4,000만 회)의 약 1.6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기술력을 자랑해야 할 성과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 어딘 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경고음일까?
어쩌면 이 문제는 현재 한국이 당면한 많은 문제들, 대학 입시에 집중된 교육 시스템, 정치가 만들어 낸 경제적, 이념적 양극화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각각의 원인들을 좀 더 상세하게 파헤쳐보자.
정답 찾기 교육: 문제의 원인일까, 또 다른 증상인가?
한국 교육은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교육이 무엇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 배움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등의 목적은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있다.
학생들은 좋은 점수를 따는 방법 즉, 출제자가 숨겨놓은 ‘정답’을 누구보다 빨리 더 많이 고르는 법에 집중한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학생들은 이렇게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길 밖으로 걷는 게 허용되지 않는 독단의 세상에 살고 있다. 다양한 사고가 허용되지 않는 객관식 위주의 교육, 입시 위주 학습, 주입식 교육, 이런 시스템이 학생들을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너먼이 그의 저서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의 뇌는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1과 느리고 신중한 시스템2로 나뉘어서 작동하도록 진화되어왔다.
한국 교육 방식은 빠르게 답을 찾는 것에, 즉 시스템1만을 과도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분명히 고정관념이나 인지 편향에 쉽게 빠지는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에 많은 원인을 제공한다. 물론 동일한 교육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한국 학생들 중에서도 비판적 사고력을 지닌 사람들은 충분히 많다. 그렇다면 교육 시스템의 문제만으로 AI 슬롭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교육이 AI 슬롭 소비의 원인인가, 아니면 두 문제 모두 우리 사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떤 원인에서 야기된 증상일 뿐일까?
양극화의 딜레마: 뭐가 먼저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이끌어 낸 양극화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에 맞서기 보다 점점 더 자신의 신념을 강화해주는 정보만을 찾고 타인에게도 이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AI 슬롭은 이런 확증 편향을 먹이 삼아 번창한다. 내가 미워하는 대상을 조롱하는 영상, 나의 믿음을 강화해주는 가짜 뉴스가 알고리즘을 타고 끊임없이 공급된다. 언론과 자본 역시 정치의 흐름에 동참하여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은 문제다. 정치가 사회를 양극화시킨 것일까, 아니면 이미 양극화된 사회가 그런 정치를 선택한 것인가? 그렇다면 AI 슬롭은 양극화의 원인인가 아니면 양극화가 만들어 낸 또다른 결과물일 뿐인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정치 양극화는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심해지지만 한국만 유독 AI 슬롭 소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미국도 정치적으로 극도로 분열되어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지 않았다. 이는 양극화 문제 역시 한국의 AI 슬롭 열광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아님을 시사한다.
알고리즘의 역설: 선택의 주체는 누구?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를 조종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클릭, 시청 시간, ‘좋아요’를 분석하여 우리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더 좁은 정보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필터 버블 또는 에코 챔버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반문한다.
“필터 버블 또는 에코 챔버라는 설명은 오히려 우리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끌어내리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클릭할지 말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기계가 우리의 손을 대신해서 화면을 누를 수도 없다. 그렇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이런 유혹 장치 개발에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것은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유의 기능을 되살리는 질문들
위에서 언급한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처럼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선택을 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어쩌면 AI 슬롭의 범람은 이런 진화 과정에서 역량을 강화한 우리 뇌의 시스템1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결과일 수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콘텐츠들이 느리고 촘촘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미래, 인간이 다시 주체가 되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느리게 생각하는 능력, 즉 시스템2를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다. 빠른 생각을 하는 뇌와 느린 생각을 하는 뇌가 서로 협력을 통해 최적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말이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질문하기이다. 질문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인 자동 반응을 멈추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일까?’ 라고 묻는 순간, 우리의 뇌는 즉각적 수용이 아닌 신중한 검토 모드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이 영상이 왜 내 피드에 뜨지?’와 같은 단순한 질문 하나로 우리는 알고리즘의 의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부터 추천 영상을 보기 전에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l 지금 이 영상은 진정으로 내가 선택한 것인가?
l 영상을 보며 느끼는 감정의 원인은 무엇일까?
l 이 영상이 보여주는 정보는 검증이 가능한가?
이미 시작된 변화들
우리 앞에 놓인 진짜 문제는 새로운 첨단 기술이 아닌 이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문제를 인식해야 해결이 시작된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문제 인식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일부 언론사를 중심으로 팩트 체크 센터를 가동하고 있으며, 일부 유튜버들도 AI가 생성했음을 명확하게 표시하기 시작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각 개인들의 각성이다. 이 역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디톡스 등 긍정적인 움직임이 감지된다. 일부에서는 질 높은 콘텐츠를 찾기 위해 오프라인 소모임이 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알고리즘에 길들여지는 대신, 비록 비효율적이고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편안하고 달콤한 거짓 대신 불편한 진실을 찾아 나설 수 있다.
한국인의 높은 기술 적응력과 능동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확신 대신 의심을, 수용 대신 검증을, 편안함 대신 불편함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한 지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