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구직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가?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많은 2030세대가 ‘일단 어디라도 붙고 보자’는 심정으로 무차별적으로 이력서를 발송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진로를 고민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라는 상투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뿐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과연 진로 선택의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일까?
빵을 좋아하는 것과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어릴 때부터 빵을 사랑해 유명 베이커리 탐방에 시간을 쏟던 한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학생은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빵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즉 파티쉐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잠시 서서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빵을 좋아하는 것과 파티쉐가 되고자 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관중석에서의 열정과 훈련장에서의 땀은 같은 ‘축구 사랑’에서 출발하지만, 직업으로 축구를 하는 즉 프로 축가 선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축구를 사랑하는 감정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빵을 좋아하는 학생이 파티쉐가 되고자 한다면 이 학생은 일정 기간 제빵 기술을 배운 후 베이커리나 제과점에 수습 직원으로 취직해 경력을 쌓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학생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빵에 대한 애정일까, 아니면 베이커리에서 근무하기 위해 요구되는 자질일까?
새벽 출근, 반복적인 작업, 체력 소모, 선배들과의 관계 형성—이런 요소들은 ‘빵을 좋아하는 마음’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이 더 이상 그것을 좋아하는 것과 무관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떤 준비를 하도록 도와야 할까?
‘잘한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영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떠올려보자. 주변 어른들은 “영어를 잘하니까 통역사가 되면 어떨까?”라고 조언하곤 한다.
그런데 영어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과 동시통역사로 일할 수 있는 것 사이엔 어떤 유사점이 존재할까? 동시 통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교육 이수, 실무 수습 경력은 물론이고, 오랜 기간 꾸준히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과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단순히 “언어 과목 점수가 좀 높다”는 절대 동시 통역사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학생이 어떤 것을 ‘잘한다’고 판단하는가? 대개는 학교 성적이나 특정 기술의 숙련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얼마나 폭넓은 맥락을 고려하고 있을까?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문제 풀이 속도도 빠르다. 그렇다면 이 학생은 수학자나 데이터 분석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수학자가 되려면 정해진 답이 없는 미지의 문제를 수년간 탐구할 인내심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가가 되려면 숫자 너머의 비즈니스 맥락을 이해하고, 비전문가에게 복잡한 분석 결과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다. 학교에서 측정하는 ‘수학을 잘한다’는 평가가 이런 요소들까지 포함하고 있을까?
결국 ‘잘한다’는 것은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특정 맥락과 요구사항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학생에게 “넌 이걸 잘하니까 이 직업을 고려해봐”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그 직업이 실제로 요구하는 능력의 스펙트럼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 걸까?
그림을 잘 그린다고 미술가가 될 수 있을까?
좀 더 직접적인 예를 살펴보자. 그림을 아주 잘 그리고 동시에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언뜻 보기에 이 학생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는 이상적인 케이스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학생이 미술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미술을 직업으로 삼는 다는 것은 전업작가가 되거나, 미술 평론가가 되거나,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되거나, 언론사의 미술 관련 기자가 되거나, 경매사 등에서 일하거나, 고미술 작품을 재생하거나 하는 등의 수 많은 직업을 떠올릴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예들 가운데 전업작가가 되는 경로를 고려해 보고자한다.
일단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업실을 오픈하고 작품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부모님의 재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상업 갤러리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서 초기 작품 활동을 하고 이를 통해 작품 판매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업작가의 경로를 걷기 위해 가장 먼저 일종의 후원자를 찾아야 하는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조건은 그림 실력이 아니라 사업계획서처럼 작성된 기획서다. 자신의 능력과 미래 구상을 글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야 한다.
선발 이후에는? 갤러리 담당자, 미술 전문 기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자기 홍보 활동이 필수다. 한 전업 작가는 이렇게 토로한다. “좋아하고 잘하는 작품 활동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생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니?”가 아니라 “기획서 작성,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SNS 홍보 활동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분법적 사고가 놓치고 있는 것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고려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 단순한 이분법이 문제이지 않을까 묻고 있는 것이다. 이분법적 질문은 과연 학생들이 직면할 복잡한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이는 마치 지도 없이 등산을 시작하면서 “왼쪽 길과 오른쪽 길 중 어느 쪽으로 갈래?”라고만 묻는 것과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길의 방향이 아니라 그 길이 어떤 지형인지, 얼마나 가파른지, 중간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내가 그것을 넘을 체력과 장비를 갖췄는지가 아닐까?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두 발로 직접 걸어보며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특정 과목이나 기술에만 편중된 ‘잘하는 것’을 가진 학생이 그것만으로 사회에서 직업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일은 더욱 험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전혀 소용없다는 말일까? 그건 아니다. 문제는 이런 단순한 분류 방식 자체에 있다.
필요한 것은 더 깊고 다양한 질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대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체할 필요가 있다.
빵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유명 제빵학교에 지원하기 전에 인근 베이커리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면 어떨까? 좋아하는 취미로 돈을 번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노력을 요구하는지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미술을 좋아한다면 전업 작가의 작업실에서 도제로 일하거나, 미술관 인턴이나 무급 서포터즈를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내부의 업무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시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잘하는 대상을 이루는 세부 요소들은 무엇이며, 실제 경험을 통해 내가 잘하는 것이 어떤 수준이고 어떤 부분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리 속 상상이 아닌 경험을 통한 체득
중요한 것은 이런 고민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 요소들과 유사한 실무를 경험하며 본인이 직접 느껴야 한다.
구직난 시대에 학생들은 더 많은 이력서를 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선택하려는 직업의 실체를 얼마나 경험해보고 있을까?
우리는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묻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 직업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경험해봤니?”
“네가 좋아하는 그것과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의 차이를 알고 있니?”
“네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해봤니?”
진로 선택의 출발점은 단순하고 급한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을 통한 탐색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탐색은 머릿속이 아닌 현장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