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왜 맷 데이먼일까?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 역을 맡은 맷 데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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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영화 <오디세이>가 영화 애호가 사이에서 많은 화제입니다. 유명 감독이 연출한 작품답게 많은 헐리웃 스타가 영화에 출연했는데,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주인공 오디세우스 역에 맷 데이먼이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왜 맷 데이먼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나요?

왜 맷 데이먼일까?

원전이 호메로스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특징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일반적인 전사와 달리 전략에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거짓말과 변장도 서슴지 않습니다. 상대의 심리를 읽는데 능하며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는데, 트로이인들을 목마로 유혹해서 오랜 전쟁을 끝내게 된 것 역시 오디세우스가 낸 아이디어였죠.

그런데 신화와 전설에 의하면 그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타향을 헤매고 다니며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야 마침내 자신이 떠난 고향이자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왕국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오디세우스에게 얼마나 다양한 면모가 있는지 알게 되는데, 영화 애호가라면 이런 입체적인 인물상에 적합할 나만의 주연 배우 후보를 몇 명쯤은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왜 맷 데이먼을 주인공으로 선택했을까요?

감독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자 주연인 맷 데이먼에 관해 자신이 갖고 있던 흥미로운 생각을 드러냅니다.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마크 와트니는 보통 사람, 즉 ‘everyman’에 가까웠고, <본> 시리즈에서 맷 데이먼은 마치 슈퍼히어로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그 두 가지 면모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놀란은 오디세우스처럼 복잡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인물을 관객이 끝까지 따라갈 수 있게 만들려면, 관객과 특별한 연결을 만들어 내는 배우가 필요했다며 설명을 마쳤습니다.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놀란이 지금까지 그려온 영웅과 맷 데이먼이 연기해 온 영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바로 이 지점을 살펴보는 게 왜 감독이 오디세우스 역을 자신이 이전에 주연을 맡겼던 배우가 아닌 맷 데이먼에게 맡겼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요?

놀란의 영웅들

먼저 놀란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 그려낸 주인공의 캐릭터 중에 영웅적인 서사를 담고 있던 역할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굳이 영웅이 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엄청난 거부이고, 사회적 지위도 있으며 거기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젊은 남성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온 집안의 집사 알프레드는 끊임없이 그에게 배트맨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자기만의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삶을 선택할 수도 있는 사람이 왜 자기의 행복을 포기하고 험난한 영웅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요?

배트맨이 되기로 결심한 자신의 선택으로 브루스 웨인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세상을 구하려다 보니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기도 했고, 심지어 자신이 구하려 한 고담시 시민들로부터 배트맨이 악당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한동안은 자신의 실체마저 세상에서 지워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놓이게 됩니다.

이처럼 놀란이 영화 <다크 나이트>를 통해 보여 준 배트맨은 우리가 흔히 영웅에게 갖는 고정관념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 주는 슈퍼히어로는 아니었습니다.

영웅이 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왜 영웅이 되기로 선택하는가, 그리고 한번 선택한 뒤에는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는가.

바로 이런 의문들이 놀란이 그려낸 새로운 영웅을 보며 떠오르는 질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만약 감독이 맷 데이먼을 배트맨으로 캐스팅했다면, 글쎄요. 맷 데이먼의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가 배트맨 슈트를 입고 고뇌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주로 날아간 쿠퍼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는 배트맨과는 또 많이 결이 다릅니다. 그는 솔직히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대한 사명을 품고 있던 사람이 아닙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그가 보여 준 모습은 자신과 자기 가족을 그 암울한 상황에서 빼내고 싶어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쿠퍼와 그의 가족이 살아가는 영화 속 지구는 사실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 나서는 우주선 조정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그의 딸 머피는 현재 상황을 답답해하던 아빠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는 오해를 합니다. 정작 딸을 위해 떠난 쿠퍼는 딸에게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처하게 되며, 그렇기에 반드시 돌아와야 할 목적이 생깁니다. 즉 그에겐 인류를 구하겠다는 나사의 거대한 명분보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겠죠.

딸을 향한 이런 아빠의 절절한 사랑은 우주의 반대편에서 위기에 처한 쿠퍼를 구해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됩니다. 영화는 알지 못하는 힘을 통해 블랙홀에 빠진 아빠와 지구에 남겨진 딸을 아빠가 남겨준 시계로 연결해서 얼렁뚱땅 인류를 구해냅니다. 영화에서 핵심은 딸을 향한 아빠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지, 블랙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죠.

가족을 향한 사랑이 가져온 부수적 효과로 인류를 구하게 되는 사람. <인터스텔라>에서 놀란이 그려낸 영웅은 바로 이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매슈 매코너헤이가 연기한 쿠퍼는 다시 말해서 가족을 향한 사랑 외에는 어떤 영웅적인 능력도 없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블랙홀로 던져 넣을 수 있는 진정한 아빠였을 뿐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 맷 데이먼도 출연합니다. 그가 맡은 맨 박사는 엄청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자기가 인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홀로 행성에 도착한 후 자기가 도착한 행성은 인류의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조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인물이죠. 인류 생존을 외치던 남자가 위기의 순간에서야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인류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뿐입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서 다른 사람을(사실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을 합니다. <마션>에서 맷 데이먼은 누구보다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인간을 연기했는데, 바로 그 생존에 대한 욕망이 <인터스텔라>에서는 다른 사람을 배신하게 만드는 동기가 됩니다. 한쪽에는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인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도대체 언제는 영웅이 되고, 언제는 이기심이 되는 것일까요?

맷 데이먼이 연기한 영웅들

이제부터는 맷 데이먼이 그동안 연기해 온 역할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 <엘리시움>의 맥스, <마션>의 마크 와트니. 그가 연기한 이 다양한 캐릭터들 사이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자기 스스로 영웅이 되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오기 힘든 고난의 상황에 던져지게 됩니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 방사능에 오염된 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엘리시움>의 맥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제이슨 본. 이들에게 가장 절박한 질문은 ‘어떻게 세상을 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상당히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습니다.

놀란이 영화를 통해 그려낸 영웅들 대부분이 스스로가 한 선택 때문에 선택의 결과로 고통을 받게 된다면, 맷 데이먼이 연기해 온 영웅적인 역할들은 사실 자신도 모른 채 어떤 상황에 던져졌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상황에 떠밀린 사람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

이들은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떻게 하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저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최선을 다해 버텨냅니다. 이들에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명분보다 지금 살아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이런 지점이 맷 데이먼이 연기한 캐릭터들에게 우리가 친숙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우리는 모두 대부분 세상을 구할 정도의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야 합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식량이 떨어져 가는 화성에서 자기의 배설물을 이용해 감자를 키워야 했던 마크 와트니의 웃음에 묘하게 공감하게 되는 것. 내 힘으로 거대한 세계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만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것. 그런 점에서 <마션>을 보고 있으면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거대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완벽하게 관리하며 살아가는 사람.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현대의 영웅은 바로 이런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맷 데이먼은 늘 착한 생존자는 아니었다

물론 맷 데이먼이 언제나 생존을 위해 묵묵히 버티는 선한 소시민만 연기한 것은 아닙니다. <리플리>가 좋은 예입니다. 톰 리플리 역시 자신이 처한 운명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인간이지만, 마크 와트니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바꾸고, 타인의 삶을 훔치며, 거짓말과 속임수를 밥 먹듯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점은 같을 수 있지만, 그들이 선택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완전히 정반대인 캐릭터들입니다. 바로 이런 면이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아닐까요? 한쪽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멍청할 정도로 묵묵하게 노력하는 인간이지만, 다른 쪽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삶까지 망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전혀 다른 인간처럼 보이는 이 양극단의 모습이 혹시 하나의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지는 않은가요? 살아남고 싶다는 욕망. 그 같은 욕망이 어떤 상황에서는 끈질긴 생존 의지로 발전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타인을 기만하는 동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따라 올라가며 찾아낸 바로 이 양면성이 어딘지 익숙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호메로스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이 양면성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서사시를 씁니다. 바로 오디세우스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어떤 영웅인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직접 읽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을 통해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를 위대한 전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디세우스가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처럼 힘과 무력으로 누구든 제압할 수 있는 출중한 인물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지략일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자신을 숨기고, 거짓말을 해서 상대를 속일 수 있는 인물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걸 파악하고 그것을 역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지략. 트로이 전쟁을 끝낸 목마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지략만으로는 오디세우스를 전부 설명하기 힘듭니다. 자신이 겪은 모험을 통해서 드러낸 그의 모습에는 다양한 면모가 드러납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미친 척을 하기도 했던 만큼 처음부터 영웅이 되기를 갈망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아킬레우스 같은 전쟁 영웅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신들의 장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어지는 커다란 시련에 빠져듭니다. 아테나의 도움을 받는 대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괴물과 마녀를 만나며, 바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위기를 맞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오디세우스가 한 일은 한 가지입니다. 어떻게든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의 힘만으로 탈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신의 도움으로, 때로는 동료의 도움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결국 자기가 결정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 것은 오디세우스 자신입니다. 이런 면을 생각하면 맷 데이먼보다 더 오디세우스에게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본>의 제이슨 본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야 하고, <마션>의 마크 와트니처럼 홀로 남겨져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하며, <리플리>처럼 필요하다면 능청스럽게 상대를 속여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의 생각에 의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행동을 하는 인물을 관객이 끝까지 따라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놀란은 그 점을 강조합니다. 오디세우스는 많은 실수를 하는 인물이고, 관객이 그 실수까지 함께 따라가야 한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맷 데이먼을 선택한 이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평범함과 특출함 사이

놀란은 맷 데이먼을 ‘평범한 사람과 슈퍼히어로 사이’에 있는 배우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감독이 생각한 오디세우스 역시 바로 그런 지점 사이에 끼어있던 인물이 아닐까요? 그는 분명 영웅입니다. 수많은 역경을 견디고 결국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완벽한 영웅은 아닙니다. 자신을 과신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자존심 때문에 더 큰 시련을 만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놀란이 이번에 그려내고자 했던 영웅은 바로 이런 인물이 아닐까요? 초인적인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에 가깝기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불완전하기에 그의 자취를 좀 더 멀리까지 따라갈 수 있는 영웅. 우리처럼 실수도 하고, 욕망도 드러내며,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한. 하지만 던져진 운명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

그렇다면 이런 특징은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과거 맷 데이먼이 보여 준 역할들과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출한 인물을 연기할 때조차 그의 얼굴에서는 일상의 불안과 피로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험난한 모험으로 지친 오디세우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그가 신화 속 영웅이라는 사실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먼저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떠돕니다. 신들의 뜻에 휘둘립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은 이처럼 특출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가진 사람인 것일까요? 만약 여러분들이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오디세우스는 이미 우리에게 꽤 익숙한 영웅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는 곳이 험하고 멀지라도, 심지어 어디인지 모를지라도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말입니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한 가지 질문이 더 떠오릅니다. 오디세우스가 그렇게 오랜 시간 살아남아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가 떠나온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특히 그를 20년 동안 기다린 페넬로페는 어떻게 버텼을까요? 그리고 놀란은 왜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위해 칼립소라는 또 한 명의 여성을 원본과 다른 특성을 부여하면서까지 영화의 중심에 세운 것일까요? 한 남자의 귀환이 영웅의 서사로 완성되기 위해, 그를 기다리는 여자와 그를 사랑으로 떠나보내는 여자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이 물음이 궁금하시다면 다음 기사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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