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맞다) 거짓(틀리다)과 옳다 그르다

Room with a big window, It has light house view.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을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사건에 대해 쓰는 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등장인물 주변의 ‘분위기와 감정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구나. 누군가가 말을 꺼내기 직전의 망설임, 말이 떨어진 뒤 공간에 남겨진 감정의 여운 같은 것들 말이다.

『등대로』의 오프닝 장면은 이런 버지니아 울프만의 고유한 특징들이 잘 드러러난다. 램지 부인은 아들 제임스에게 말한다. “그래, 물론이지. 내일 날씨가 맑으면 말이야” 그렇게나 등대에 가고 싶어하는 아들을 위해 가능하면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둘러서 말을 하는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아이가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물론 못 가게될 확률이 높지만 세상에 그토록 확실하고 확정적인 것이 어디있겠는가. 닥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법이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진실을 제외한다면! 

 엄마는 아직은 아이가 충분히 기쁜 감정을 지니고 있도록 하고싶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빠인 램지 씨가 등장한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은 채, 마치 얼음 송곳처럼 목표한 곳을 정확하게 찌른다. “하지만” 응접실 창 앞에서 걸음을 멈춘 램지씨는 (이 말을 하려고 일부러 멈추기까지 하는 것이다). “날이 맑지 않을 게다”라고 아이의 기대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렇다. 물론 그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일 등대에 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아이 마음 속 어딘가에 아빠의 얼음 송곳에 찍힌 커다란 구멍이 남는다. 

유명한 작품이라 다수의 한국어 번역본이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본은 이 순간 램지 부인의 생각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가 말한 것은 옳았다. 그의 말은 항상 옳았다. 그는 거짓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이 문장을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힘이 내 시선을 끌어잡아 당기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꼽씹으며 읽다보면 마음 한구석이 살짝 불편해진다. 이상하다. 왜 ‘옳았다’라는 말이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질까.

뭔가 낯설다는 생각에 찾아본 원문에서 울프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What he said was true. It was always true. He was incapable of untruth

여기에는 칭찬도 없고, 훈계도 없다. 다만 램지씨의 언어가 갖는 특징과 성질에 관한 중립적인 묘사만 있다. 사실이었다는 것.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슬며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사실을 말하는 것과, 옳은 말을 하는 것은 정말 같은 걸까?

언어가 도덕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때

영어의 true는 비교적 중립적인 단어다. 논리학과 수학에서 명제의 참, 거짓을 표현할 때 바로 이 true or false를 쓴다.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에서 반드시 성립하는 진술인지 아닌지를 드러낼 뿐이다.. 단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어의 ‘옳다’는 조금은 감정적이다. 화자의 판단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잘했다는 눈빛, 틀렸다는 고개 끄덕임. ‘옳다’는 말은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화자가 상대의 점수를 매긴다는 인상을 남긴다다.

그래서 번역본 속의 램지 씨는 원본의 캐릭터로부터 살짝 변신을 한 모습이 된다. 그는 단순히 사실만을 말하는 그렇기에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서, 언제나 옳은 편에 서 있는 사람, 마치 도덕적으로 완벽 추구하는 듯한 사람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울프는 정말 그를 그렇게 그리고 싶었을까?

한국어에는 판단용 단어 세트가 두 개

한국어에는 친절하게도 판단 도구를 두 벌이나 준비해 두었다.

하나는 ‘옳다’와 ‘그르다’ 이다.

이 단어들이 등장하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 그렇게 말해도 됐을까
  • 그 선택은 바람직했을까
  •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이 말들은 주로 사람 사이에서 쓰인다. 그래서 감정이 쉽게 묻어나고, 가끔은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맞다’와 ‘틀리다’

이쪽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 계산이 맞는지
  • 사실과 일치하는지
  •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여기에는 도덕적 긴장이 거의 없다. 확인하고, 고치고, 넘어가면 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 단어 세트를 자주 섞어 쓴다는 점이다. 그것도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이 말로, 말은 태도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고른 단어가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말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를 판단하기 시작한다. 즉 나의 말버릇이 나의 태도로 인지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일은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램지씨의 말은 사실이다. 즉 맞는다(true). 하지만 그의 태도가 옳은 것인지,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의해 어떤 감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지, 울프는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하지만 세심하게 램지씨의 말을 들은 주변인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분기들을 하나하나 묘사해낸다. 어쩌면 그렇게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의 상태를 독자들이 함께 느끼며 각자가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과연 어떤 쪽이었나?

마지막으로, 사소한 질문 하나

지금 당신이 마음속으로 ‘이건 맞아’라고 생각하고 있는 어떤 말이 있다면, 거기에 살짝 덧붙여 보자.

그래서, 그 말은 진정 동기부터 결론까지 모두 옳은가.

내포한 의미도 진정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 역시 편안하게 동의할 수 있는 방식의 언어였던가?

이 질문에 존재하는 작은 틈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조금 더 주변을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보여주려는 것처럼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로(설사 사실이더라도) 관계의 문을 닫기보다 상대를 위해 감정과 사유의 여백을 남기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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