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도대체 뭐야? 쥬라기 공원 테마 파크라도 만들 셈인가?”
험한 고갯길을 낑낑대며 기어오르는 제임스의 이마 위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아니, 그런 부자가 사람 대접을 이렇게 해선 안 되지.”
한국의 거대 IT 회사 오너인 브라이언 리가 남해 무인도에 짓는다는 초호화 리조트. 그곳의 전력 시스템 공사를 맡게 된 순간 제임스가 품었던 환상은 무참하게 깨졌다. 무안국제공항에서 내린 후 무인도 프로젝트 베이스 캠프까지 이르는 과정은 말 그대로 험난하기만 했다.
“뭐야, 제기럴.”
마침내 베이스캠프가 있다는 언덕을 기어오른 제임스의 시선에 헬리콥터와 거대한 몽골 유르트가 차례로 들어온다.
“이런, 멋진 정장 차림의 인디애나 존스 같군. 당신이 제임스?”
어리둥절하고 있던 제임스의 옆으로 어느새 온몸에서 돈 냄새가 풀풀 새어나오는 브라이언이 다가서고 있었다.
“네, 브라이언 리 회장님.”
“제발 날 그냥 브라이언이라고 불러줘.”
여유 넘치는 재벌의 표정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제임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무인도 언덕 위 허허벌판에 세워진 거대한 유르트 내부는 엄청나게 럭셔리했다. 제임스의 머릿속으로 브라이언 리가 짓는다는 초호화 리조트의 모습이 그려졌다.
‘전력을 엄청나게 먹는 시설들이겠군!’
“자, 그럼 준비해 온 계획을 들려주게.”
얼음을 가득 채운 탄산수를 받아든 제임스는 미처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유리컵을 내려놓고 서류 가방을 꺼낸다.
“처음 요청하신 내용은 이번 럭셔리 리조트에 사용할 전기를 전부 재생에너지로만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맞아, 바로 그거야. 요즘 글로벌 슈퍼 리치들이 재생에너지에 얼마나 예민한지 몰라. 그래서 이번 리조트는 필요한 에너지를 전부 태양광, 바람, 그런 것들로 만들어야 해.”
브라이언의 열의에 찬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얼른 차가운 탄산수를 들이키며 제임스는 ‘여기까지 타고 온 헬리콥터가 얼마나 많은 CO2를 배출하는지 알아?’라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고 있다.
“그렇죠, 요즘은 재생에너지가 대세이긴 합니다.”
“대세뿐인가, 반드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지, 크큭.”
제임스는 오는 내내 연습해 둔 미소 띤 얼굴을 만들며 대답을 대신한다.
“자, 그럼 객실이 200개 정도 될 이 리조트에 전력 설비를 하려면 예산이 얼마나 들지?”
예상했던 그대로다. 부자와 정치가들은 모든 것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 전력 설비를 어떤 전략에 맞춰 준비하냐에 따라 예산은 천차만별인데, 이들은 그냥 ‘그래, 도대체 얼마야?’라며 묻는다.
제임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괜히 잘못 대답했다간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게 음… 재생에너지로 전력 설비를 하는 건 발전기를 쓰는 것과는 달라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집니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래서 얼마냐고. 생각해 온 가격이 있을 것 아냐? 이 참에 한몫 단단히 챙겨야지, 안 그런가?”
“일단 제가 추천해드리는 안은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태양광 패널을 조금 설치하고 실제 전력은 지하에 설치한 가스 발전기로 생산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비용도…”
순간 브라이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발견한 제임스는 급히 말을 멈춘다.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했다가 나중에 사람들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날 뭐라고 부르겠어.”
브라이언의 짜증 난 목소리가 제임스를 긴장시키지만, 그렇다고 엉망으로 설명을 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벌어진다. 제임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간다.
“물론 그건 그런데…”
“그런데?”
“재생에너지란 게 실제로는 언론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언론이란 말에 브라이언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자네, 내가 언론사들 정도는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모르나?”
제임스는 갑자기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하게 여겨졌다. 이런 사람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건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먼 곳까지 힘들게 왔으니 그럼 설명을 한번 해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이야.”
흙먼지를 뒤집어쓴 제임스의 모습을 보던 브라이언이 고급 소파에 등을 기대며 제임스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네, 그럼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브라이언의 눈빛이 반짝인다.
“우선 200실 규모의 고급 리조트라면 시간당 최소 130kWh에서 최대 1400kWh 사이의 전력을 소비합니다.”
“어려운 말로 기선 제압을 하려는가 보군. 좋아, 좋아. 뭐 130에서 1400 정도다, 이거지. 더럽게 차이가 크구만.”
제임스는 손바닥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말을 잇는다.
“네, 그리고 이 섬에 적용할 수 있는 발전 방식은 태양광뿐입니다.”
“왜 그렇지? 네덜란드의 풍차처럼 풍력 터빈이 운치 있지 않을까?”
“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풍력 터빈이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소음이 꽤 거슬릴 수 있고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계절이면 돌아가는 날개에 부딪혀서 새들이 꽤 많이 죽습니다.”
“오~ 그러면 절대 안 돼. 여긴 고급 리조트인데 소음이 크면 안 되지. 거기다가 새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죽어 있으면 보기 흉할 테니.”
브라이언이 잠시 표정을 찡그리더니 말을 잇는다.
“좋아, 그렇다면 넉넉하게 시간당 1400인가 뭔가 그 정도의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되겠군.”
속으로 한숨을 내쉰 제임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해나간다.
“하지만 고급 리조트라면 저녁 시간에 전기를 가장 많이 쓰게 될 텐데 해가 진 뒤엔 태양광 패널로는 발전을 하나도 못합니다.”
브라이언의 큰 눈이 더 커진다.
“이런, 그건 생각지도 못한 문제군.”
잠시 고민하던 브라이언이 다시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ESS라는 게 있지 않나? 내가 IT 기업의 총수란 걸 잊지 말게.”
“역시 대단하십니다. 맞습니다. ESS라는 게 있습니다.”
신경을 곤두세운 탓인지 제임스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그럼 해가 진 뒤엔 ESS에 충전된 전력을 사용한다고 가정하고, 저녁 7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전력을 가장 많이 쓴다면 최소 1400kWh의 출력을 가진 ESS 7세트가 필요하고 새벽 2시 이후부터 해가 뜰 때까지 1세트,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예비로 1세트 더… 총 9세트가 필요합니다.”
“오케이, 그러면…”
브라이언이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제임스가 얼른 끼어든다.
“잠시만요, 그런데 9세트만으론 비가 많이 내리거나 태풍이 불거나 하면 여전히 부족합니다.”
제임스의 추가 설명에 브라이언이 귀찮은 듯 대답한다.
“좋아, 좋아. 그럼 총 얼마나 더 필요한데?”
“이 지역 과거 기후 정보를 살펴보니 태풍이 한 번 몰려오면 대략 3~4일 정도는 비를 뿌리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5일 정도를 버틸 ESS가 추가로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9 더하기 5, 총 14세트가 있으면 되나?”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은 낮 시간에도 ESS에 저장된 전기를 써야 하니, 최소한 20세트 이상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이가 없군. 이거 완전 ESS로 뽕을 뽑으려는 수작 아니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브라이언의 시선을 피하며 제임스는 계속 추가 설명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ESS를 많이 세우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뭐야, 또 무슨 문제가 있는데?”
“문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ESS 모듈을 설치하면 섬의 군데 군데가 마치 공장 설비를 들여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20세트의 ESS를 충전하려면 태양광 패널도 여분이 더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브라이언의 안색이 변한다.
“가만있어 봐, 그러면 태양광 패널도 20세트를 더 깔아야 하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아니, 그렇게 예비 설비가 많이 필요하면 어떻게 태양광 발전이 저렴하다는 거야?”
제임스는 또다시 심호흡을 하며 브라이언이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제임스를 바라보던 브라이언은 뭔가 생각이 떠올랐는지 흥분된 얼굴로 제임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국전력은 그럼 한국 전체 전력 계통의 상당수를 태양광 발전으로 대체하려면 ESS를 얼마나 많이 설치해야 된다는 거야? 여태까지 ESS를 그렇게 많이나 설치했다고?”
“한국전력 입장에선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니 왜? 그놈들은 무슨 다른 묘수라도 있나?”
“사실 전력 계통 운영자 입장에선 태양광 발전량이 부족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어차피 간헐성 전력원이라 예비 전력을 항상 준비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지?”
“예비 가스 발전소가 존재하거든요. 이들은 날씨 등으로 인해 태양광 발전량이 부족한 동안 발전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발전을 안 하는 조건으로 발생한 손실을 보조받아요. 문제는 오히려 태양광 발전량이 너무 많은 게 문제에요. 육지에 ESS를 설치하는 이유도 바로 이 잉여 발전량을 충전해 두었다가 나머지 시간에 예비 발전소를 쉬게 하고 전기를 공급하려는 데 있고요. 요즘 재생에너지 계통 차단이 많아서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 민원이 심하거든요.”
“계통 차단?”
“네, 태양광 발전량이 너무 많아지면 정전 위험이 높아져서 전력 거래소에서는 태양광 발전 사업자에게 발전을 중지하도록 하거든요. 그럼 사업자들은 수익이 줄어들게 되니 지역 정치권 등에 줄을 대서 어떡하든 ESS를 설치하게 하려는 거죠.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 돈으로 설치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죠”
“우리하고는 완전히 정반대네. 그런데 그나저나 그런 예비 발전소나 ESS를 설치하는 비용을 누가 내는 거야?”
“그건 전 국민이 나눠서 내는 셈이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전력 공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전기 요금에 더해져요. 그러니까 산업용이나 상업용이든 가정용이든 전기를 써야 하는 모든 사용자가 비용을 나눠서 부담하는 셈이죠. 그래서 회장님처럼 고민을 할 필요도 없고요.”
브라이언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제임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
“사실 이 섬에 아까 말씀드린 용량 정도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면 섬에서 남는 공간이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모양으로 선착장 근처에 태양광 패널을 조금 설치해서 선착장에 필요한 전기나 좀 보태는 걸로 하고 실제 전력은 LNG 발전을 하시는 게 가장 효율적이에요.”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재생에너지를 쓴다고 광고할 수 없잖아.”
드디어 제임스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잠시 뜸을 들인 제임스는 준비해 온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증서를 사면 되니까.”
“뭐라고?”
“애플 같은 업체가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현대자동차도 요즘 이 방법을 따라 하는 것 같던데.”
“그게 뭔데?”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에게는 REC라는 일종의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부여하는데 전기 사용자에게 파는 거예요. 그럼 회장님처럼 재생에너지 사용을 광고하고 싶은 기업에서 이 인증서를 전기 사용량만큼 구입하면 회장님은 재생에너지 사용 증빙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거죠.”
갑자기 브라이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온다.
“아니, 뭐라고? 그렇다면 이 섬에 LNG 발전기를 도입해서 전기를 만들어도 REC만 사면 내가 재생에너지를 쓰는 걸로 광고할 수 있다고?”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애플이 미국 내 주요 사업 시설의 전기를 전부 재생에너지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그 회사는 전기를 많이 먹는 생산 시설은 해외에 있으니 사무실 전기 사용량만큼만 REC를 사면 마치 완전히 재생에너지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죠.”
“음, 역시 애플은 머리가 비상하단 말이야. 그럼 이번 리조트 프로젝트도 그렇게 하자고. 생각보다 당신 똑똑한데.”
브라이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제임스와 악수를 나눈다.
“선착장에서 내려서 리조트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는 통행로 상단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그늘도 지고 비도 막아줄 수 있어서 일거양득일 겁니다. 그 정도 설비면 선착장에서 쓰는 전기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거예요.”
“그러다가 혹시 전기가 나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라고 하는 편이 마케팅 측면으로 더 좋지 않을까요?”
브라이언이 폭소를 터뜨린다.
“오! 제임스 이 친구, 아주 물건이군. 좋아. 혹시라도 선착장에 전기가 나가면 뭐 낮 시간에 그럴 일이 거의 없긴 할 테고, 주요 고객이라면 어차피 헬기로 올 테니 상관도 안 할 거야. 그렇게 하자고. 멋진 재생에너지 천국이 되겠군.”
제임스는 가방을 챙기며 창밖을 바라본다. 헬리콥터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저 멀리 바다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속이는 걸까.’
제임스는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헬기에 올라타며 손을 흔드는 브라이언 리에게 미소를 띤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인다. 다시 엄청난 양의 CO2를 배출하는 광경을 향해….
